Ⅰ.
서론
도시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다. 단순히 물리적인 환경이나 체계화된 시스템으로 구성된 공간이 아니라 인생 주기가 있는 유기체처럼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하는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친다. 인간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서 역사의 시간과 도시라는 공간은 날줄과 씨줄로 오랜 시간 엮이며 문명으로 발전해왔다.
문명의 발전과 함께 진화해온 인류는 도시를 이루며 사회, 제도, 문화, 경제, 정치를 그리고 예술과 종교를 발전시켰다.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이집트문명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그리고 나일강이 흐르는 곳에 위치하여 발달했다. 도시의 기원은 문명의 기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고대문명은 대부분 고대도시에 기반하며, 도시의 발달은 문명의 탄생과 발전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쇼버그(G. Sjoberg)는 문명과 도시 발달을 3단계로 제시했다. 첫 번째는 도시 이전 단계인 부족사회로 수렵, 채집경제를 기반으로 자급자족하는 소규모 부족사회다. 두 번째 단계는 전산업 사회로 정착과 함께 농업 기반의 경제체계가 자리 잡음으로써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계급이 생겨나 수직적 사회구조가 생겨났다. 이 시기에 곡식의 양을 기록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류 최초의 문자인 수메르문명의 쐐기문자가 생겨났고, 볍률과 제도, 학문이 발전했고, 관개를 통해 수력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인류의 대규모 정주 공간이 도시로 발전했다. 도시가 발전하고 문자 체계와 교통수단이 발달하게 됨에 따라 다른 지역, 다른 시대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문명 발달의 속도는 가속화되었다. 세 번째 단계는 산업사회다.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기술 발전으로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상업의 힘이 세지고 소비자 계층이 탄생하면서 일반 시민들도 다른 지역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식민지 시대가 열리면서 산업과 결합을 통해 세계 경제를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되었고, 타문화와의 교류를 통한 문화적 융합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Sjoberg, 1965: 58-59).
인류 최초의 도시는 약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문명 지역에서 발생한 우르크, 우르, 에리두, 라가쉬, 키쉬 등으로 추정된다. 비옥한 토양과 온화한 기후 그리고 풍부한 수자원이 공급되는 지역에 있는 이들 초기 도시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이곳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고, 지식, 발명이 모이고, 종교, 철학, 과학, 의학 등이 발전되는 혁신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 발전의 전제 조건은 농업 잉여, 사회제도, 문자 발명 등이다. 인간은 언어, 문자 등의 상징을 통해 사고를 발전시켰으며 도구, 기술 발명을 통해 물질적 발전을 이루었다. 이런 정신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에서 발전의 상호작용을 통해 복잡한 문명을 발전시켰고 이 발전 성과가 저장, 누적되는 공간이 필요해졌다. 이렇게 형성하고 발전된 도시는 끊임없는 인지를 통해 공간을 상징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다양한 가치를 누적시키며 발전해 왔다.
인류 역사에서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이집트문명이라는 걸출한 고대 문명이 탄생하고, 유럽 르네상스의 기초를 제공한 중세 이슬람 문명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중동⋅이슬람 지역의 도시들은 시간과 공간의 유기체로 생성되고 발전하며 사라져갔다. 역사 속에서 새로운 문화와 생각의 시작은 위기와 다름에서 출발했다. 위기와 다름은 때로는 갈등과 충돌을 야기하지만 융합과 화합이라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과 세계를 창조한다. 중동지역과 이슬람은 갈등과 충돌이라는 프레임으로 늘 서양 문명과 서구 세계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과 도시문화의 발전 과정에서 바라본 중동⋅이슬람 도시는 동서양의 문화가 교류되면서 새로운 문화와 생각을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본 연구에서는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인류 4대 문명 중 중동지역에서 발흥한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중동지역으로 이식된 그리스 로마 문명의 주요 도시문화와 중동의 보편종교인 이슬람 문명의 주요 도시문화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는 도시기원과 문명 발달에 대한 이론적 고찰을 선행하고 이를 토대로 주요 중동 도시문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도시 우르크, 그리스 로마 문명권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이슬람 문명권의 도시 콘야를 선정하여 각 도시의 변천 과정과 특징을 도시문화의 기원의 이론적 틀 안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Ⅱ.
도시 문명의 이론적 고찰
인류는 문명의 발전과 함께 도시를 만들었다. 무리를 형성하고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사회, 지도, 문화, 경제, 정치를 발전시켰다. 농업의 시작으로 인구는 급증하였으며 정착한 공간을 중심으로 많은 기술, 자원, 정보와 경험이 누적되었다. 인류 문명은 정착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였는데, 정착은 단순히 주거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주를 통해 형성된 건물과 여러 시설이 상징적 의미를 가졌으며, 문화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공간적 토대였다(Renfrew, 2001: 128).
도시가 시작되었던 시기는 기원전 5,000년 경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3,000년에서야 기술, 문화, 법률, 제도, 과학 등을 발전시키며 도시다운 도시로 발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도시의 기원은 문명의 기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즉 고대 문명 발상지의 상당 부분은 고대도시에 기반하며, 또한 고대도시의 발달은 문명의 탄생, 발전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Childe는 인류문명의 세 차례 혁명적 발전단계를 주장했다. 첫 번째 혁명은 신석기 혁명(neolithic revolution)으로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기존의 수렵⋅채집활동 중심의 경제활동 방식이 농업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농업 활동의 시작으로 인류는 정착하게 되고 야생식물을 재배하고 야생동물을 사육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식량잉여가 획기적으로 증가하였고 인구도 급증하였다. 두 번째 혁명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도시혁명이다. Childe는 그의 저서 『What happens in History』(1942)에서 ‘도시혁명(urban revolution)’이란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면서 도시혁명이 인류의 두 번째 혁명을 초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Morris는 이 시기에 도시 발전은 농업 활동 시작으로 인한 농업잉여 발생, 교역과 기록을 위한 문자의 발명, 구성원의 효과적 통치와 관리를 위한 사회제도 구축 등에 힘입은 것이라 주장했다. 세 번째 혁명은 산업혁명으로 중세봉건 사회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혁신적인 기술의 발전이다. 18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인류는 경제 분야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혁신과 변화를 이루었으며 큰 도약을 이루었다.
Flannery(1972)는 인류 문명의 발전을 무리(band)단계, 부족(tribe)단계, 족장(chidfdom)단계, 국가(sate)단계의 네 단계로 구분하였다. 무리단계는 혈연으로 구성된 소규모 무리를 형성하면서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며 생존한 기원전 1만 년 이전 시기를 말한다. 무리단계에서는 구성원 간 평등적 지위와 나름의 원시적 종교의례를 행하며 집단 자치권이 형성된 단계다. 부족단계는 여러 씨족집단이 연합을 이루며 생활한 기원전 7,000년부터 기원전 1,300년까지의 시기로 부족 간 연합을 통한 혈연집단의 계층화가 시작되었고 정례적인 연중의례행사를 시행하기 시작하였다. 족장단계는 기원전 5,500년부터 기원전 800년 시기로 부족들이 모여 계층사회를 형성한 사회다. 이 시기에 혈연집단의 계층화는 가속화되었으며 경제의 재분배와 통치권의 상속이 이루어졌다. 마지막 국가단계는 성문법, 관료제도, 세제, 왕위제도 등 계층화된 사회정치 조직을 가지는 단계다.
한편, 인류의 사회발전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존재한다. Thomsen은 인류발전을 도구 재료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의 3시대 구분법(tree age system)을 제시하였다. 이 구분법은 도구, 기술 측면을 기준으로 구분하였고 다른 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져 사용되었다. Montesquieu는 그의 저서 『The Spirit of the Laws, De l’esprit des lois』(1748)에서 인류 발달단계를 야만(savagery), 미개(barbarism), 문명(civilization)의 3단계로 구분하였는데 고고학 분야에서 Morgan과 Tylor가 진화론 관점에서 사회발전단계를 야만사회, 미개사회, 문명사회로 구분하고 단계별 종교특징도 각각 애니미즘, 다신교, 일신교로 구분하였다. Steward(1949)는 진화론 관점에서 사회발전단계를 수렵 채집단계, 초기 농경 단계, 문화형성단계, 지역문화 전성기 단계, 초기 정복단계, 암흑시대, 순환정복시대, 철기 문명 시대, 산업혁명 시대의 아홉 단계로 구분하였다(신정엽, 2016: 7-8).
도시기원과 고대 및 중세도시의 특징은 여러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Chlide(1950)는 초기 도시의 특징을 (1) 도시 크기, (2) 도시 지능, (3) 잉여 생산, (4) 공공건물과 도시 랜드마크, (5) 신분 계급, (6) 기록의 발전, (7) 학문의 발전, (8) 예술의 발전, (9) 정기교역, (10) 정치, 사회, 경제 구조를 가진 지역사회로 제시하였다. Weber(1966)는 중세도시의 특징으로 (1) 성벽, (2) 시장, (3) 법률, (4) 공동체 의식, (5) 정치 자율성을 제시하였다(Thomas, 2012: 220-221). Weber에 따르면 도시의 개념과 기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것이며 도시란 거주 지역의 중심에 지역시장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생산의 경제적 전문화로 인해 그 도시의 주민이 아닌 사람들도 공산품이나 상품을 그 시장에서 얻는 곳이라고 정의함으로써 도시를 정의할 때 많이 사용되는 인구규모를 반대한 대신 경제, 정치 측면을 고려하였다(고일홍 외, 2014: 34).
도시형성과 발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 된 것은 인류의 정착이다. 수렵, 채집, 사냥을 통해 식량 획득은 매우 제한적이며 비효율적이었을 뿐 아니라 이동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인구증가와 함께 신석기시대에 원시농업이 시작되면서 더 많은 식량자원을 효과적으로 취득하는 방식이 요구되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정착이 시작되었고 작물화, 가축화를 통한 농업혁명으로 이어졌다. 도시의 기원에는 농업의 발달이 중요한 토대가 된다. Childe(1936)는 기후변화이론(climate change theory)으로도 불리는 오아시스이론을 통해 빙하기 이후 북반구에서 빙하가 북쪽으로 퇴각하였고, 북부 아프리카, 아라비아 지역의 여름 강우는 유럽 북부로 이동하였으며 근동 지역은 오아시스, 주요 하천 지역(나일강,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건조해졌기 때문에 건조지역으로 둘러싸인 오아시스는 식량 생산의 최적지로 주목받았고 오아시스라는 제한된 공간에 밀집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농업, 가축사육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대되는 주장으로 Flannery(1968)는 근동 지역에서는 농업 시작 이전에 이미 수렵 채집 인구가 증가하였고, 식량 생산은 주로 이란, 이라크, 터키 구릉지, 팔레스타인 삼림 지역의 주변부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시작이라는 설명보다는, 과거의 소수의 식량자원에서 더욱 넓은 스펙트럼의 동식물 종이 식량자원으로 확대되었음을 광역스펙트럼혁명이론(Broad Spectrum Revolution theory)을 통해 주장하였다(신정엽, 2020: 9-10).
Ⅲ.
인류문명과 중동 도시문화의 만남
도시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이며, 도시에는 인류의 발자취가 그대로 담겨 있다. 한마디로 도시는 문명의 요람이자 삶의 공간인 것이다.
마지막 빙하기 말, 기온상승으로 인류는 야생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서쪽 나일강에서 동쪽 페르시아만까지 펼쳐진 오늘날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터키 동남부와 이란의 서쪽까지를 아우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농업에 가장 유리한 지역으로 인류문명 탄생의 주역이 되었다. 기원전 6,000년 경 농업이 자리 잡고 곡물과 가축을 키우는 정착형 농업 공동체가 등장하면서 예리코(Jericho)는 현대 농업의 선구자적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에머밀과 보리, 콩과 식물을 키우는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정착했고, 오늘날 터키에 위치한 차탈회위크(Catalhoyuk)는 인구가 5,000명에 7,000명 정도인 당시 초대형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러나 예리코와 차탈회위크는 도시로 발전하지는 못했고 대규모 촌락에 머물렀다. 최초의 도시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가장자리인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에서 탄생했다.
1.
우루크
기후변화는 도시화를 촉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원전 5,000년 시기에 지구 기온의 상승으로 인해 페르시아 만의 해수면이 오늘날보다 2미터 가량 상승해 있었고 오늘날의 아라크 남부의 건조 지역은 당시 광활한 습지대였다. 이에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페르시아 만과 만나는 삼각주 습지대에는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사람들로 모여들었다. 이곳에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난나(Inanna)신을 섬기는 신전 에안나(Eanna)라는 신전과 가까운 곳에 하늘의 신인 아누(Anu) 신을 모신 쿨라바(Kullaba) 신전이 세워졌다. 습지대 사람들은 기원전 5,000년경 그 신성한 장소를 중심으로 정착하기 시작했고 대규모 정착 지역인 우루크를 형성했다(페이건⋅스카레, 2015: 128).
삼각주에서 잉여 식량이 생겼고, 건설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도시화가 추진되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다양한 건축기술, 신념, 도구, 농법, 각종 기능과 직업, 관념을 가졌고 대형 관개시설을 구출함으로써 충적평야의 새로운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우르크에서 일어난 농업혁명은 도시혁명의 산물이었다.
도시가 다른 정착지들과 구분되는 점은, 도시의 물리적 특성보다 도시가 촉진하는 인간 활동이다. 우루크는 ‘신들의 대장간’으로 알려졌을 만큼 고도로 숙련된 금세공인, 구리 제련공, 야금업자, 보석 세공인을 유명한 장소였다. 고대 우루크는 이러한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몇 개의 특별 구역으로 나뉘었다. 우루크의 역동성과 고속 성장은 우루크가 교역의 발상지 역할을 맡은 데 힘입은 바가 컸다. 우루크산 가공품은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 이란, 시리아 등지에서 그리고 파키스탄에서도 흔한 물건이 되었다. 우루크인에 의해 개발된 혁신적인 벌집 가마, 짐수레 바퀴, 그리고 배의 돛 뿐 아니라 지불수단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원통 인장과 세모꼴 첨필로 새긴 쐐기 모양의 기호, 설형문자는 인류의 혁신이었다.
우루크는 각자의 부와 기능과 권력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는 계층사회가 되었고, 문서 기록으로 인해 소유권이 확립되었고, 부채가 발생했고, 의미가 강제되었다. 우루크 최초의 성벽은 기원전 3천년 초반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새로 출현한 경쟁 도시들 혹은 주민들의 반란으로 인한 전쟁의 결과였다. 국가와 제국과 왕이 있기 오래전 이미 도시가 존재했다. 정치조직의 기본 요소인 도시에서 관료제와 종교가 탄생했고, 도시방어를 위한 군대와 왕도 등장했다. 기원전 3천년대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문학 작품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왕과 도시와 신을 찬미하는 대표적 서사시다.
우루크에서 출발한 도시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명맥을 유지했고, 새로운 민족들인 아모리족, 아시리아인, 히타이트인에게 전파되었다(윌슨, 2020: 42, 45, 61, 72).
2.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를 점령한 이후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시대에 옥타비아누스 군대와의 해전에서 패하며 로마의 속주로 전락한 뒤, 이슬람군에게 점령당할 때까지 이집트의 수도로써 고대부터 중세 시기까지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운 지중해의 중심도시였다. 알렉산드리아는 나일강 삼각주 가장자리에 있는 지역으로 지중해로의 진출과 물자 운송이 용이했던 무역의 거점이었다(Shaw, 2003: 34).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 로마, 비잔틴제국, 기독교 문명이 어우러져 꽃을 피운 헬레니즘 시대의 최대 중심지였다.
그리스 로마문화의 영향으로 당대 최고의 건축술이 동원되어 세련되면서 화려한 도시가 건설되었다. 기원전 5세기부터 그리스 세계의 도시들에서 확고히 자리 잡았던 격자무늬가 알렉산드리아의 규칙적이고 질서정연한 지면 구획에 반영되었고 사원, 궁전, 연극장, 원형경기장, 상점, 목욕탕 등이 질서 있게 건축되었다. 도로는 지중해의 바다와 나일강 유역까지 연결되어 해상과 강을 연결하는 외국과의 교역을 원활하게 했다.
그리스 철학자 디오 크리소스토무스의 말처럼 “세상의 온갖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모습을 보며 서로 비슷해지는 시장”인 알렉산드리아에는 그리스인, 유대인, 이집트인, 페르시아인, 메소포타미아인, 바빌론인, 아나톨리아인, 시리아인, 이탈리아인, 이베리아인, 카르타고인, 페니키아인, 에티오피아인 등 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알렉산드리아에는 4,000개의 궁전, 4,000개의 목욕탕, 1만 2,000명의 기름을 파는 상인들, 1만 2,000명의 정원사, 인두세를 지불할 4만 명의 유대인, 400개의 극장과 오락장들이 있었다. 알렉산드리아는 바야흐로 헬레니즘 최대 도시로 한때 인구가 백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도시로 발전했다(손주영⋅송경근, 2009: 76-77).
알렉산드리아는 서로 다른 문명의 교차가 허용되고 장려되는 진정한 국제도시이자 문화도시였다.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그리스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유입되고 프톨레마이오스 1세 때 설립된 고등 학문 연구 기관 무세이온(Museion)이 설립됨으로써 그리스식 학문과 예술이 이식되었다. 유클리드, 스트라톤, 아르키메데스, 에라토스테네스, 헤로필로스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알렉산드리아로 와서 실험적인 사상과 예술 창작 등을 시도하였다. 고대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파로스 등대(Pharos lighthouse)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 2세기에 걸쳐 세워진 과학과 건축술의 총체였다. 알렉산드리아를 당시 전대미문의 지식과 연구의 중심지로 만든 것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종교, 과학, 예술, 문학 작품의 수십만 권의 장서가 소장된 학문과 예술의 전당으로 클레오파트라 시기에는 70만 권에 달하는 서적을 보유할 정도였다(Shaw, 2003: 56).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타자기가 발명되기 이전 유럽 전체가 보유하던 도서의 10배 가까운 서적이 소장되는 당시 세계 최대의 학문의 전당으로 발전하여 이집트 헬레니즘 문명의 총체적 집산지로 자리했다(이병수, 2016: 7-8).
3.
콘야
중앙 아나톨리아 고원의 남서쪽에 있는 튀르키예 중부의 주요 도시인 콘야는 지정학적으로 인류 문명의 본류인 아나톨리아반도의 문명사와 맥락을 같이 했다. 신석기 시대에 조성되어 도시 이전 단계인 촌락 형태로 발전된 차탈회의크가 콘야에 있으며, 메소포타미아 상류 문명으로서 고대 왕국은 물론 리디아,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 등 강대국들의 침략과 지배를 고스란히 경험했다. 11세기 이후 셀주크왕조 시기에 수도로 번성해 예술과 학문이 꽃을 피웠으며 메블라나라고 불리는 이슬람 신비주의 종단의 총본산으로 종교적 영성이 가득한 도시다.
기원전 1,500년경 히타이트의 영향을 받았던 콘야는 1097년부터 1243년까지 셀주크왕조의 한 분파인 룹 셀주트 술탄국의 수도였다. 흑해와 지중해까지 진출해 교역에서 큰 이익을 얻었던 룸 셀주크 제국의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과 수피 문학이 이 시기에 꽃을 피웠다.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면서 중동은 물론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뛰어난 학자와 예술가들이 몰려들면서 바그다드에 이어 이 지역에 새로운 이슬람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1273년 설립된 이슬람 신비주의 메블라나 교단은 콘야의 상징이다. 이슬람의 다른 종파들이 교리나 지식을 강조할 때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은 민중이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체험을 강조했는데, 당대의 대표적 수피 사상가인 잘랄 알딘 루미는 메블라나 수피즘의 창시자로, 콘야는 메블라나 수피즘의 본거지가 되었다. 루미는 종교적 관용과 깊은 사랑을 전한 수피즘의 대스승으로 여겨지는데, 루미의 깊은 영성과 삶에 대한 관조를 담은 시는 <마스나비>라는 시집으로 전해지며 꾸란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불멸의 작품이 되었다. 루미의 사상은 유럽 지성계에서 큰 영향을 끼쳤는데 16세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 17세기 빛의 화가 렘브란트, 19세기 대문호 괴테도 직간접적으로 루미 사상의 영향을 받은 유럽의 지성이다.
메블라나의 수행 방식인 세마의식은 메블레비하네라 불리는 종단의 성소에서 훈련을 받은 세마젠에 의해 거행되는데 죽은 자에게 입히는 수의를 뜻하는 흰색 의상과 무덤을 의미하는 검은색 망토 그리고 묘비를 의미하는 긴 모자들을 쓰고 빙글빙글 돌며 행하는 세마의식은 인간이 가장 겸손해지고 솔직해지는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신과의 합일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라는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슬람 신비주의 고장답게 콘야 시내 거리의 여성들은 대부분 머리에 ‘히잡’을 쓰고 있고, 길가에 술집이나 유흥 시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매력을 지닌 콘야는 같은 이슬람 시대 건축이어도 아야소피아나 블루 모스크 등 이스탄불의 건축이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이 융합된 면이 강한 동시에 크고 화려하다면 콘야의 건축물들은 담백한 외형적 미를 추구하고 있다. 콘야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으로는 루미가 묻혀 있는 메블라나 박물관 및 영묘다(김수완, 2023: 151-166에서 재구성).
Ⅳ.
결론
최초의 도시들은 기원전 5,000년을 기점으로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하였으며, 그 후 나일강 유역에서, 다음은 지중해와 세계전역에서 나타났다. 이들 도시는 촌락에서 발전하여 인간의 새로운 정착지라는 형태로 나타났으며 성장과 쇠퇴를 거듭하며 발전했다. 기원전 3천년대 중국에서, 하라파(Harappa)시대(2,600~기원전 1,900년)에 인더스강 유역에서 고대도시는 상당한 규모로 나타나며 발전의 정점을 맞았다. 도시인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발전시켰고, 기술적, 정치적, 문화적, 지적인 분야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혁신을 이루어냈다. 도시에서 일어난 발전은 전반적인 문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를 증명하듯 ‘문명(civilization)’이라는 단어는 ‘도시국가’라는 뜻의 라틴어 ‘civitas’에서 비롯되었다(리즈, 2015: 15-16).
인류 최초의 도시인 우루크를 포함한 메소포타미아 도시들은 물 공급, 작물 재배 등의 초기 농업과 동물 사육 등 도시 발전에 필요한 이주와 정주를 통해 유기적으로 발전했다. 농업의 시작과 문명의 발전은 한 지역에서의 정착을 통해 가능하였다. 즉, 정착은 단순히 영구 주거의 결정을 넘어서는 인류의 혁명적 변화이며 나아가 인류는 Childe의 주장대로 신석기에서 청동기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농업을 토대로 ‘도시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신정엽⋅김감영, 2020: 343). Morris의 주장은 농업 활동으로 인한 농업잉여 발생으로 효과적 통치와 관리를 위한 행정과 사회제도, 종교의식 같은 새로운 활동이 생겨났음을 뒷받침하였고, Childe가 제시한 신분 계급, 기록의 발전, 정기교역, 정치, 사회, 경제 구조를 가진 지역사회 등의 초기 도시의 특징이 나타났다.
기원전 1,000년대 후반기와 그 후 몇 세기까지는 지중해 연안의 도시 문화가 꽃피웠던 시기였다. 진취적 성향의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규모가 크고 강력한 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했는데 그들이 건설한 도시는 북아프리카 해안가까지 확장되었다. 기원전 332년 이집트 북부의 항구 도시로 건립된 알렉사드리아는 한 때 인구가 백만 명에 달하며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까지 규모, 부, 화려함에서 모두 로마를 능가했다. Flennery의 인류문명 발전 4단계를 살펴볼 때, 그리스와 로마에서 정착된 도시국가 체제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이식되어 관료제도와 세제, 성문법, 통치 체제 등 계층화된 사회정치 조직을 구성하며 발달하였다. Childe가 주장한 초기 도시의 특징 10가지 중 알렉산드리아는 특히 공공건물과 도시 랜드마크, 기록의 발전, 학문의 발전(수학, 천문학 의학 등), 정기교역. 정치⋅사회⋅경제 구조를 가진 지역사회 등 주요 요건을 만족시키며 당시 국제도시의 위용을 자랑한다.
Montesquieu는 인류발달 단계를 야만, 미개, 문명의 3단계로 구분하였고 이에 영향을 받은 Morgan과 Taylor는 진화론 관점에서 사회발전단계를 야만사회, 미개사회, 문명사회로 구분하고 단계별 종교특징도 각각 애니미즘, 다신교, 일신교로 구분하였다. 도시가 촌락과 차별화되는 특징 중 하나는 많은 인구의 집중과 더불어, 다양한 사회 및 문화 요인이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 측면에서 도시에서는 다양한 종교의식이 치러지며, 이를 수행하는 종교건물, 공간이 존재하며, 종교 관련 직업도 형성되었다. Carter에 따르면 종교 지도자와 종교 기능의 건물을 중심으로 인구가 모여 종교적 신념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된 것은 이슬람 도시의 기원에 잘 나타난다(Carter, 1977: 15).
이슬람 초기 대다수는 유목민인 베드윈이었고 아랍무슬림들이 도시 생활에 적응해 도시 문명을 발전시킨 것은 종종 도시화한 신생 정복 국가들과의 접촉을 통해서였다. 점차 무슬림정복자들의 통제가 강화되자, 정치적, 종교적 제도들이 확립되면서 궁전, 모스크 등을 갖춘 진정한 도시로 발전했다. 이슬람 세계의 많은 도시는 기존 문명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우마이야 왕조의 수도 다마스쿠스와 알렉산드리아, 코르도바 등은 고대도시를 무슬림이 재활용한 경우였다(분 외, 2013: 505). 도시들은 정복된 지역 내에서 새로운 이슬람 문명 확산의 주된 매개체였다. 셀주크의 정복 활동은 1071년 이후 아나톨리아의 콘야와 같은 대부분의 도시를 이슬람의 지배하에 놓았다. 사회차원에서 인간은 종교집단을 구성하고 소속감을 가지며, 종교적 결속력과 사회 유대감을 형성한다(웨이드, 2009: 38). 콘야는 이슬람 신비주의 메블라나 수피즘의 상징으로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종교적 의식을 발전시키며 중세 이슬람 종교도시의 명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중동지역은 인류 4대문명 중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이 탄생한 곳이자 그리스 로마문명이 이식되어 발전된 곳이며 이슬람이 발흥하여 종교 문명으로 발전한 인류문명의 보고이다. 인류문명의 혁명적 계기였던 농업의 시작과 농업잉여 발생은 인류 최초의 도시인 우루크와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문명을 탄생시켰고, 한때 인구가 백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국제도시로 발전한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 로마, 비잔틴제국의 문명이 융합되는 헬레니즘 문화도시로 번성하였다. 7세기 아라비아반도에서 발흥한 이슬람 문명은 우마이야 왕조에 이르러 이베리아반도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중동의 보편종교로 자리매김했고, 11세기 룸 셀주크왕조의 수도였던 콘야를 이슬람 신비주의 메블라나 수피즘의 본산지로 탄생시켰다.
인류는 문명의 발전과 함께 도시를 만들었다. 인류 최고의 유산인 도시는 정착 및 농업의 시작과 함께 도시문화를 형성했으며 도시혁명을 통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종교 등을 발전시켰다. 본 연구에서 살펴본 중동 도시들은 인류의 주요 문명과 교감하며 서로를 발전시키며 인류 역사의 혁신적인 발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동인이 되었다.